아름다운 법칙, 대위법

 

 

음악이 처음 만들어졌을즈음에는
한개의 선율이 있었을 뿐일 것이다.

서양 음악의 역사를 보면
가장 처음에 나오는 것이 종교음악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중세시대에는
재력은 국왕과 영주들이,
무력은 기사들이 가지고 있었고
지식은 종교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국왕과 영주들은 밤낮없이 영토를 확장하거나 파티등을 여는 것에 바빴고
기사들은 지고새는 전장에서 바빴으며 농민들은 허리빠지게 짓는 농사에 바빴다.

결국 공부, 지식의 탐구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수도원의 수도승들이었다.

음악은 기원전부터 시작되었을테지만 기록되지 못하여 사라져 버렸고 여러가지 지식의 축적을 도맡았던 이 수도사들 덕에 종교용 미사 음악이 기록으로 남아 서양 음악사의 첫 장을 장식하게 된 것일게다.
이들은 신앙의 한 방편으로 음악을 했다.
그래서 처음 음악을 했을때 이들은 신에대한 찬미의 표현으로 한개의 선율을 모두 한 목소리로 음울하고 느리게 읊듯이 불렀단다.

이후 넘치는 재능과 이전의 음악에 따분함을 견딜 수 없었던 몇몇 진보적 음악가들이 화음을 넣자 종교계의 윗분들은 분노했다고 한다.
하나로 모아져야할 신앙의 음들이 여러개로 분산되는 것을 보며 마치 신에대한 믿음이 혼란스럽게 엉키는 것으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선율을 수많은 사람이 같이 따라부르게 하는 힘,
음색은 달라도 같은 음표를 따라 이동하는 그 일치된 모습은 때로 아름답지만 때론 끔찍하다.

지구가 둥글다고 하거나 인간은 신이 진흙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미물에서 진화했다거나 교황이 재물을 착복하고 권력을 남용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변호사없는 종교재판을 통해 공개 화형을 당하곤 했었다고 한다.
이유는 지구가 네모났고 인간은 신이 진흙을 빗어 만들었고 교황은 성스러운 신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하나를 바라보고 나아가면 큰 힘으로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오락중에 레밍즈라는 것이 있다. 이 게임의 소재가 된 레밍이란 쥐들은 엄청난 무리를 지어 몰려 다니곤 한단다. 쥐들은 자기 앞의 쥐들을 따라 달리며 맨앞의 쥐는 뒤에서 밀어대는 쥐들에 밀려 달린다.
그리곤 절벽등을 만나면 맨 뒤에 있던 쥐까지 함께 다 떨어져 죽어버린다고 한다.


맨앞에 밀려 달리고 있던 쥐는 절벽을 발견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뒤를 따르던 쥐들은 앞 쥐의 엉덩이와 발, 흔들리는 꼬리만을 보다가 갑자기 탁트인 시야와 함께 절벽에 떨어져 내린다.
떼지어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쥐떼는 감상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장관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처참한 무지다.
멸망하는 백제에 절벽으로 향한 3천 궁녀와 침몰해가는 일제에 가미가제로 떨어져내리던 붉은 일장기의 비행기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화음은 많은 논란과 비난속에서도 결국 채택이 되고 음악적 실험가들은 또 다시 도전을 한다.
이번엔 주멜로디에 추종하는 몇개의 화음이 아니라 아예 주멜로디가 여러개가 된 것이다.
한개의 멜로디가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동안 다른 멜로디는 밑으로 깔리고 하나가 뛰어가는 동안 다른 하나는 느긋하게 띄엄띄엄 걸어간다.

화음의 경박함에 놀랐던 사람들은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주 음악적 말세가 온 듯 느꼈을런지도 모른다.
주멜로디에 절대 신을 대입시키고 화음에 성부와 성자와 성신을 대입시키던 그들은 아주 기겁했을게다.
지구가 둥글어지면 땅에 있던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내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될 것이라고 걱정을 하고 짜여진 틀을 벗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이 온통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라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멜로디들은 제각각 갔지만 지저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와졌으며 그들이 그렇게 우려하던 중세의 질서가 무너졌지만 지구는 파멸하지 않았다.

하나 뿐인줄 알았던 길이 끝나자 들판이 펼쳐졌고 길이 끝나되 삶이 끝나지 않았다. 방사형으로 펼쳐진 사람들의 등뒤로 새롭게 좁은 길들이 무수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때론 만나고 때론 합치고 때론 흩어졌다.

두, 세개의 노래가 서로 경쟁하듯 동시에 울리면 대개 난장판이 되어 모든 노래가 다 죽어버린다는 것만 알고있던 사람들은 대위법이 생기고 난 후 각자 다른 음을 불러도 전체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실은 기껏해야 그 시대의 일반적 공유에 지나지 않지만 그 틀을 벗어나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대개 감옥에 보내거나 정신병원에 보내지곤 했다.
정신병원에서 시대의 촌스러움을 한탄하고 있는 사람은 그 얼마나 될까.

19세기의 진실중 상당수가 20세기에 와서 무지에의한 고집과 집착이 되었고 과거의 진실이 거짓으로 환원되며 어쩌면 미래에 거짓이 될지도 모를 새로운 진실로 교체되었다.

진실이 결말에 닿지 못할때 반대자는 항상 필요하고 반대자는 '오직 하나'인 것을 깨뜨릴때 나타난다.

대위법은 그런 상황이 혼란과 파국을 맞지 않고도 가능하며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음악적 주장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빨강과 파랑등 보색의 근접배치는 주로 선정적이거나 지저분해 보였지만 인상파의 그림속에서는 아름답게 어우러져 그 이전 회화에서 빠졌던 햇살을 살려내었다.


Claude Monet 'Woman with Parasol Turned toward the Left'

결국 각자의 개성을 어우러지게 하는 법칙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속되는 진실의 발전을 위한 준비, 획일의 탈피를 일궈낼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대위법이 좋다.

아름다운 법칙, 대위법으로 이뤄진 멋진 노래, 삶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