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발명품은 골드버그 발명품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는 전형적인 것으로 연필깎는 기계장치다. 작동법은
아래와 같다.
A. 창문을 열면,
B. 연이 바람에 의해 날아 올라가고,
C. 연줄이 당겨지게 되어,
D. 좀나방들을 넣어둔 우리의 문이 열리게 되며,
E. 쏟아져 나온 좀나방들이 붉은색 프란넬 셔츠를 갉아먹게 되고
F. 셔츠의 무게가 점점 줄어들게 되어,
G. 도르레로 연결된 반대편 구두가 점차 밑으로 내려가
H. 전원장치를 가동시키게 되고,
I, 다리미가 뜨거워져서,
J, 바지를 태우게되고,
K, 연기가 관을 통해
L, 나무속에 들어가게 되면,
M, 주머니쥐가 연기를 못참고
N, 바구니로 뛰어 나온다.
O, 쥐의 무게로 바구니가 밑으로 내려가면,
P, 딱다구리가 갖혀있는 새장을 들어올리게 되고,
Q, 딱다구리가 연필의 나무를 쪼게 되어,
R, 연필심이 나오게 된다.
S, 비상용 칼은 좀나방이나 딱따구리가 병들거나 일을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항상 상비해 둔다.
전반적으로 놀라운 발명품이지만 역시 압권은 마지막의 비상용 칼이다. 이렇게 완벽해보이는 발명품을 창조해
놓고서 ^^; 비상대책까지 마련해 놓는 치밀함 마저 보이고 있다.
물론 약간의 수고는 감수해야한다. 한번 작동시킨 후엔 연줄을 되감아 줘야하고 창문을 닫아야 하며, 좀나방들을
다시 우리로 몰아넣어줘야 하고, 프란넬 셔츠 하나 새로 사서 걸어주고, 전원장치 꺼주고, 다음에 태울 바지
한벌 다시 다리미 밑에 깔아주고, 방안에 가득 찬 연기 환기시켜주고 - 어? 창문은 이거 한 후에 닫아야겠구나
- 주머니 쥐 기분 북돋아 다시 나무 구멍에 넣어주고 딱다구리가 마구 쪼아대 엉망된 연필 버리고 새 연필
꺼내서 비상용 칼로 깎기만 하면 되는거다.
골드버그의 발명품은 이런 식이다.
조금 편해보겠다고 엄청난 노력을 들여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고 그 기계의 작동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그
기계의 개보수에 다시 힘을 쏟는 등 기계의 노예가 되어가는 한편, 실제 그 기계의 성능이 그닥 뛰어나지도
못하며 새로운 문제점들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는걸 느끼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뿌듯해하고 인류 역사 진보의 큰
걸음에 일조, 혹은 동참했다며 자신을 속여야 그나마 마음이나마 편해지는, 그런 심오한 발명품인 것이다.
(하하.. 또 오바했당. ^^;)
사실 위에서 골드버그 발명품의 요점 중 빼먹은게 있는데 그게 바로 '오바'다.
이해하기 쉬우면서 대차게 오바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망가짐의 즐거운 쾌감을 느끼게 해줘야 되는 것인 것이다.
수많은 곳에서 인용되고 영어사전에 실릴 정도의 유명세를 띄게되며 골드버그 발명품에대해 혹자는 윗글에서
잠시 썼던 식으로 진지하게 현대과학문명에대한 비판이라며 자연주의와 느림에대한 애호를 말하기도 하고 하나의
목표를 일부러 우회하는 동안 생각치 못했던 새로운 발견, 혹은 발명을 할 수 있게 된다며 의미를 찾곤 하지만
난 그냥 농담으로써 좋아한다.
옛날 아날로그 시계의 뒤를 뜯어보면 나타나는 수많은 나사들과 오밀조밀한 장치들이 째깍째깍대며 서로의 움직임에
따라 정밀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랄까. 아니면 깔끔하게 정렬된 도미노가 차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려 엉망진창으로 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는 쾌감이랄까.
둘 다 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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