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 역시 꽤나 옛날에 썼던 글.

 

그랑 블루, 심연과 풍경

 

 

새하얀 암벽,
깨끗한 파란색의 바다,
밝고 맑은 햇살의 지중해 풍경,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고 바다를 고향처럼 바라보는 너무도 선해보이는 눈빛의 자끄(장 마크 바)와 항상 사람을 내려다보지만, 승부욕에 불타지만 결국 인간적인 엔조(장 르노)의 삶과 우정이 보기좋은 영화다.

이들은 잠수를 한다.
써핑을 하며 바다의 살결을 간지르지 않고 곧장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간다.
결국 이르지 못할 끝을 향해 중독되듯 한발 한발 더 빠져들어간다.

자끄는 바다를 무심으로 대하는듯 보이고 엔조는 바다를 성취해야할 목표로 대하는듯 보인다.
목표가 너무 허술하고 쉬워보이면 성취욕은 작아진다.
엔조는 세계 잠수 챔피언을 계속 차지하고 있으면서 나른해진 성취욕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인지 또는 우정때문인지 잠수 챔피언 대회에 전혀 관심이 없던 자끄에게 비행기표까지 주어 참가시킨다.

영화속에서 엔조는 원래 키가 크기도 하지만 사람을 항상 내려다본다. 엔조를 찍을때는 카메라도 밑에서 위로 찍고 잠수 세계 챔피언이기도 하고 그걸 자랑삼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려다보는것은 자신보다 큰 사람을 만났을때, 또는 자신은 앉아서 서있는 사람을 바라볼때는 힘겨워지는 일이다.
그럴경우 계속 내려다보기위해서는 고개를 뒤로 젖혀야한다. 상대의 키가 클수록,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고개는 점점 뒤로 꺾인다.
하지만 그럴경우의 고개를 꺾은 모습은 그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안맞는 옷처럼 거북스러워지며 우스꽝스러워지고 초라해져 보이게 된다.

바다에 들어가면 인간보다 돌고래에 가까와지는 자끄는 애초에 엔조가 넘어설 수 없는 대상이다. (영화 초반에 조안나가 자끄를 처음 만날때 그의 외관이 아닌 너무나 느리고 여유 로운 심장박동으로 그를 느끼게 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엔조는 차츰 자끄가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되고 그럴수록 더욱 절망적으로 넘어서기위해 노력한다.
덕분에 그의 삶은 좁아져가고 초조함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래서였을까.
만류를 뿌리치고 오기로 뛰어든 마지막 잠수에서 끝내 죽음을 맞으며 자끄를 '올려다보는' 엔조의 눈빛은 참으로 편안해보인다.

끝내 닿지 못할 목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엔조는 아름다움을 보았나 보다.
달리기에서 1등만을 목표로 달리다보면 달리는내내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과 바람들, 공기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게 된다.
옆으로 고개를 돌릴 새가 없기때문이다.

어쩌면 엔조는 마지막의 잠수로 자신은 물론이고 자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돌고래라 하더라도 결국 바다의 심연에는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을런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자신의 무덤으로 택한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둘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낸 사람과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던 사람) 을 바다에서 잃은 자끄는 바다에의 향수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른다.

엔조의 승부욕과는 다른 종류이지만 같은 모습으로 그의 눈은 바다에, 심연에 고 정되고 자끄 역시 마지막 잠수를 시도한다.

지상으로 통하는 인간사회를 연결하는 끈을 놓고,
아래, 심연 이라는 목표 마저 놓아버리곤
돌고래를 따라 옆으로 유영하는 자끄,

아름다운 풍경 많이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