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이야기' 6. 서진과 동진 읽은 것 중 서진편 정리

두예 장군을 대장으로 하여 오를 정복해 280년 삼국을 통일시킨 진무제(사마염)는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진무제는 사마씨의 보전을 위해 같은 성씨의 왕을 많이(27명) 봉해 그들로 황실을 보위케 하였으며 외척에겐 중요관직을 주어 대권을 쥐게 했고 문벌가문들엔 높은 벼슬, 녹봉을 주어 지지를 끌어내려 했다. 진무제 치하까진 괜찮았으나 그의 사후 어리석은 아들 진혜제(사마충)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문제가 불거졌다.

진무제는 죽을 때 아들 진혜제의 우둔함을 우려해 자신의 아내 양황후의 부친, 즉 장인인 태위 양준에게 정사를 맡겼는데 양준은 진혜제를 업신여겨 정권을 독단했다. 진혜제의 황후 가남풍은 양태후와 양준으로부터 권력을 뺏아오기 위해 초왕 사마위에게 명령, 양태후, 양준을 제거시키고 정사를 보게 한 여남왕 사마량 역시 제거시킨 뒤 필요없어진 사마위도 죽이곤 대권을 잡았다. 그 후 아들이 없던 가남풍은 원래의 태자를 죽이곤 여동생의 아들을 데려와 태자로 세웠다. 이를 구실로 조왕 사마륜이 조정에 들어가 가남풍을 죽이고 진혜제를 폐한 뒤 자신이 황제가 된다. 제왕 사마경,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은 정권 욕심에 연합해 사마륜을 죽인다. 사마경은 진혜제를 복위시키고 막후에서 정사를 조종했다. 사마옹과 장사왕 사마예가 낙양으로 쳐들어 갔고 사마예가 사마경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사마옹과 사마영이 연합, 사마예를 쳤고 그 사이 동해왕 사마월이 성안 금위군을 이용 사마예를 죽이고 사마영도 낙양에 진입, 정권을 통제했다. 사마영은 사마월을 쫓아낸다. 유주자사 왕준은 선비, 오환족과 연합해 사마영을 쳤고 사마영은 흉노 좌현왕 유연에게 원군을 요청한다. 결국 사마영이 패해 진혜제와 장안으로 도주하고 장안에 있던 사마옹이 사마영을 몰아내고 진혜제를 손에 넣어 대권을 독차지한다. 사마월은 왕준과 연합, 사마옹을 격파한다. 이후 사마월이 사마영, 사마옹을 죽이고 진혜제를 독살한 뒤 307년, 진회제(사마치)를 세운다. 16년간 이어진 이 사마씨 가문 여덟왕의 혼전으로 일곱 명의 왕이 사살당했으며 병사, 백성 수십만이 죽었고 낙양과 장안은 잿더미가 되었다.

사마씨 8왕이 서로 권력을 노리다 7명이 죽는 등 혼란이 지속되자 5호(흉노족, 선비족, 갈족, 저족, 강족)와 한족이 차례로 황하 유역에 16국을 세우게 된다.

전란과 재해로 불어난 유랑민들이 익주를 차지하고 304년 성한국(대성국 > 한국)을 세우지만 역시 권력다툼과 부패로 347년, 40여년만에 멸망한다.
역시 304년 흉노귀족 유연도 이석군에서 황제를 자칭하고 한국(漢國)을 세운다. 유연과 뒤를 이은 유총은 309년 이래 세 차례 대군을 진나라 수도 낙양에 들이쳐 마침내 311년 6월 낙양 점령에 성공한다. 진회제는 붙잡혀 평양으로 끌려갔고 낙양은 전례없는 파괴를 당한다. 장안으로 도망간 진의 황실과 대신들은 진민제(사마업)를 세우지만 316년 유요가 장안성을 점령하여 서진의 나머지 문무관원을 모두 붙잡고 진민제는 유요에게 투항하여 서진이 멸망한다.

서진 시기에 일어난 기타 사건들: * 위의 조씨 가문을 숙청하고 정권을 독차지한 진의 사마씨 가문에 소극적으로 반항한 죽림칠현(완적, 혜강, 산도, 유령, 향수, 완함, 왕융)-죽림을 돌아다니며 술로 소일하거나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초라하게 입고 다니는 행동 등으로 사마씨 가문이 권장한 형식적 예교에 반대했다고.
* 축척을 이용해 우공지역도를 그린 배수.
* 낙양의 종이 값을 올린 좌사의 삼도부(三都賦: 촉나라 수도 성도, 오나라 수도 건업, 위나라 수도 낙양을 시문체로 묘사한 글).

14/5/23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