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 이야기 9: 북송과 요나라' 읽은 것
요약 정리.
보다보면 속터질 정도로 엉망진창인 송나라다. 북송시대 황제 중 그나마 좀 봐줄만한 건 신종 뿐. 나머지는
속좁거나 무능하거나 한심한 소인배들 천지로 외적에 한없이 약하고 백성들을 득달같이 착취해댔다.
960년, 후주(後周)의 전전도점검, 송주 귀덕군절도사를
겸임하던 조광윤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송(宋)을 세우고 송태조가
되다. 송태조는 자신의 경험에의해 반란을 두려워 하여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주변 소국(북한, 남당,
오월, 후촉, 남한, 형남)들을 모두 정벌해 기틀을 잡다.
916년, 야율아보기(요태조)가 거란부족을 통합하여 기틀을 다지고 야율원(요세종)이
947년 요(遼)나라로 개명하다.
979년 송태종, 요경종때 고량하에서의 싸움에서 송의 패배. 980년 요 침공시 양가장 양업의 활약과
좌절. 1005년 송진종때 요와 전연의 맹약을 맺고 송이 요에 매년 공물을 바치기로 하고
화친을 맺다.
당항족 부락중 평하부락의 척발사공은 당나라때 황소 봉기를 탄압한 일로 당 조정으로 부터 이씨 성과
관직을 받았었다. 당항족 귀족 내부 권력다툼끝에 이계천이 동분서주하며 세력을 키우고 1004년 그의
아들 이덕명이 사회, 경제발전을 시킨 뒤 그 아들 이원호가 1032년
국호를 대하(大夏), 도읍을 흥경으로 하여 황제가 되다-서하(西夏)국의
설립.
서하와 송의 1041년 호수천 전투(비둘기를 담은 함을 길가에 두었다가 열어본 순간 포위 기습 공격으로
서하 승), 1042년 정천채 전투끝에 1044년 송과 화친을 맺게되고 송은 역시 매년
서하에 공물을 바치는 처지가 되다.
1069년 송신종때 부패를 막고 나라를 건전하게 하기위해 왕안석이 변법을 시행하다.
호사를 좋아하고 무능한 송휘종 때 그의 신임을 받았지만 사람들에의해 육적(六敵)이라 불린 채경, 왕보,
동관, 양사성, 이언, 주면.
탄압받던 농민들의 봉기-1120년 강남일대 방납의 봉기(마니교, 1121년 진압), 산동성 양산박의
봉기(수호지의 소재, 36명의 두령, 1121년 송강 투항, 배신).
여진족의 흥기-여진족 완안부락 추장 오고내의 손자 완안 아골타가 1113년 추장이 되고 1114년,
요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1115년 황제로 자칭하고 국호를 금(金),
연호를 수국, 도읍을 회녕으로 두다.
1122년 송휘종은 금과 협공으로 요를 공략하기로 밀약, 금이 요의 서경을 점령하는 동안 송은 연경에서
2차례 연속 패전. 결국 금이 연경도 점령. 송은 금에 공물을 바치기로 하다.
1125년 요의 천조제가 금태종의 포로가 되며 요는 멸망.
1125년 금의 북송 침략. 겁난 송휘종은 황제를 아들 송흠종에게 넘기고 자신은 태상황이 된 뒤 남쪽으로
도망. 이강이 잠시 막아내지만 겁쟁이 송흠종과 주화파 간신들에 의해 황하 북안을 모두 넘겨주게 된다.
1126년 결국 재침공한 금에 송휘종, 흠종을 포함한 거의 모든 황족이
노예로 끌려감으로 북송이 멸망.
변경성 송 황족중 유일하게 군사를 거느리고 외지에 가있던 송 휘종의 9번째 아들인 강왕 조구가 1126년
5월 남경에서 황위(송고종)에 오르고 연호를 건염, 수도를 임안으로 정하다. 남송
시작.
북송 시기에 일어난 기타 사건들:
* 목민관인 범중엄과 포청천,
* 문학가 구양수(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기/퇴고의 중요성),
* 과학자 심괄의 몽계필담/필승의 활자인쇄.
* 사마광의 춘추시대~당 이후 오대 중 후주까지의 역사를 다룬 연도순 역사책 '자치통감' 294권.
* 꼰대 소동파의 '적벽부'.
* 화가 장택단이 당시 수도이던 변경성의 청명절 모습을 담은 '청명상하도'.
14/7/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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