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는 특이한 채소다.
양파의 본질, 혹은 내용물을 보기위해 껍질을 벗기면 또 껍질이 나온다. 다시 또 껍질을 벗겨도 또 껍질이다. 이걸 반복하면 결국 특별한 알맹이랄 것 없이 수많은 껍질들과 매운 공기만이 남는다. 사실 양파의 본질 자체가 껍질들 하나하나에 분산되어 있는 것이고 그 껍질들의 모임이 양파의 본질인 것이다.
하나의 껍질은 안쪽 껍질의 겉이 되며 바깥쪽 껍질의 안이 된다.
상당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듯 하면서도 쉽게 분리된다.

양파는 날 것으로 먹으면 자극적인 매운 맛이지만 열을 가하고 나면 단 맛으로 변화한다. 어떤 반응에의해 정체성이 변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익히지 않았을 때는 매운 맛이 양파 맛의 정체성이고 익히고 나면 단 맛이 양파 맛의 정체성이 된다. 물체를 원자단위로 분해하고 나면 석탄이나 다이아몬드나 그게 그거가 되고 말듯이 어떤 것의 정체성을 파악, 인식하려면 일정 양의 모임과 그들 상호간의 관계가 필요한 법이며 정체성은 단어 뜻과 달리 때에 따라 변화한다.

가끔 사람도 위에 말한 양파같은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난 어떤 사람을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를 한 덩어리로 파악해서 그 사람을 정의내리는 걸 부정하는 편이다. 사람은 각각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거치며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청년기에 어떤 훌륭한 일을 하고 중년기에 악한 일을 했으며 노년기에 한심한 일을 했을 때 모두를 더해 플러스 마이너스하여 훌륭함이 악한일과 한심한 일을 합친 것 보다 아주 조금 더 많았기에 그 사람은 아주 조금 괜찮았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하지 않고 각각으로 판단한다. 청년기의 그 사람을 존경하고 중년기의 그 사람을 규탄하며 노년기의 그 사람을 안쓰럽게 본다.

14/10/2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