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년만에 보는 쿤데라의 '느림'.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

라며 운을 떼는 우아한 서두와 춤꾼 이론도 여전히 흥미롭고
모든 캐릭터들이 갈수록 망가져서 결국 엉망진창 난장판이 되는
하이라이트도 여전히 유쾌하다.

책속에 스스로 썼듯이 망가지기로 작정하고 만든 근사한 농담 모음집 같다.
쿤데라 이전 책의 제목인 '농담'은 이 책에 붙였어야 하는건데.

망각은 때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미 읽었던 책임에도 세월에 젖은 망각 탓에
은근한 기시감의 향취속에서 다음 장에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