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청나게 불어댄 바람과 흩날린 눈 탓인지 오늘은 날이 말그대로 청명. (조금 춥긴 했다만.)

이 좋은 날씨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옛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고등학교때, 지각이라 헐레벌떡 달려나가 버스를 잡아탔는데 둘러보니 사람 수도 적고 학생은 아마도 나 뿐, 게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교로 가는 버스도 아니다. 버스를 잘못탄 것.

서둘러 내리긴 했는데 내리고나자마자 순간 나른해졌다.
이미 지각은 확정, 아침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쪼이고 산들 바람이 불어오고 거리는 차분하다.

어차피 지금 순간이동을 해서 학교에 도착한다고 해봤자 혼나긴 마찮가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땡땡이를 즐기자 하고는 주변 풍광을 즐기며 느긋하게 학교로 갔던 기억.

그때의 그닥 길지않던 시간들이 꽤나 행복하게 느껴졌었다.
해서 오늘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바쁜 사람들 구경하면서 널널하게 거리를 걸었다. 그러고 보면 엄청나게 바쁠 때 그토록 바랬던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 시간들중 많은 시간을 바쁘지 않음을 탓하는 걸로 보낸 듯도 하다.
바쁠 때 한가함을 그리워하고 한가할 때 바쁨을 그리워하면 맨날 그리워만 하다 죽겠지. 바쁠 땐 바쁨을 즐기고 한가할 땐 한가함을 즐길 일이다.

별 일 없이도 안락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