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촛불집회에 잠시 참가..라기 보다 구경하고 왔다.
국민 건강권에대한 고려없는 굴욕적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에 반대하는 10대
중심의 축제와도 같던 독특하고 발랄한 촛불문화제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이명박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29일, 결국 장관고시를 강행해 버렸다. 소고기 수입개방 만이 아니라도 생필품의 인상, 고유가로
인한 경제적 불안, 대운하 문제, 수도, 전기, 의료보험 민영화 문제, 독도문제 등도 쌓여가고 평화시위에대한
새벽녘 무차별 폭력진압도 발생했던지라 사람들이 폭발해 버렸다.
촛불집회는 더이상 10대 중심이 아닌 넓은 연령대로 넓어졌고 인원도 늘어났으며
시간도 길어졌다.
이 날 처음 본 촛불집회는 참 특이했다.
발랄하고 위트가 넘쳤으며 느슨하게 뭉쳐있다고 할까? 특별한 지도부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구호를 외치거나
스티커를 붙이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냥 지켜보거나 각자 자신이 하고픈 일을 알아서들 하는 듯 보였다.
남대문 경찰서장은 시민들에게 "'집으로'라는 영화도 있었잖습니까?
집으로들 돌아갑시다" 등 돌아가라고 해산권고를 계속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전경들)퇴근해",
"(마이크 잡은김에)노래해"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11시가 넘어가 시민들의 수가 꽤 줄어들자 시위대 뒤쪽으로 전경들을 배치해
시민들을 포위하려고 시도했고 시민들은 전경들의 배치를 신속하게 막아섰으며 줄어들었던 시위대의 숫자는
순식간에 다시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아마도 한국경찰들이 처음 접하는 형태의 가장 까다로운 시위대일 듯.
특별한 배후, 지도세력이 없어 제압이 힘들고 철저하게 비폭력을 고수하기에 진압을 거칠게 하기도 힘드며
해산을 결정할 사람이 없어 끈질기고 인원은 줄어들다가도 새롭게 보충되곤 한다.
게다가 대부분 디카, 핸드폰, 캠코더 등 영상장비를 갖추어 불법 탄압시
증거자료를 소문이 아닌 실제 영상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알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돈을 모금하여 지지하는 신문에 큼지막한 광고를 싣기도 하고 조중동 등의 어용신문들에대해서는 주요
수익원인 광고주들을 압박해 이들 신문에 광고를 싣지 못하게 하는 운동을 벌인다.